사과농장에 스며들다.
요즘은 펩시 제로 라임 음료에 빠져 있습니다. 하루에 500ml~ 1L정도를 먹으니, 상당히 많이 먹는 편입니다. 사실 355ml 뚱캔 2-3개면 우습게 1L는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아스파탐이 위험물질이니 뭐니 해도, 당장 말초신경 끝을 건드리는 그 청량함을 감히 거부하기란 어렵습니다. 사실 제가 이 음료에 이렇게 중독적이게 된 것은, 운명처럼 한눈에 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 두 번 맛을 보고, 이후 그 양이 늘어나며 일상에 스며든 것이죠. 그리고, 애플 제품이 제 라이프스타일에 들어온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새 제 삶의 일부를 잠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20대 친구들은 트렌드에 따라 아이폰을 구입하고, 아이패드를 구입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스며듦을 시작합니다. 이제 여기에서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친구들은 애플워치를 구입합니다. 더 갈때까지 가면 맥북을 구입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이 단계까지만 해도 "살짝 더 갔다" 정도만 생각했습니다.
갈때까지 가버렸다.
저는 3개월 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맥북이 이미 있음에도 추가로 맥북 프로를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구입 동기가 사실 엄청 넘쳐나지는 않았습니다. m1 에어 깡통을 너무나 잘 썼지만 기본형이 가진 8GB 램으로 어떤 작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에 대한 아쉬움을 늘 느껴오고 있었습니다. 디스플레이 사이즈의 아쉬움도 따랐습니다. 그래서 1년 가까이 고민했습니다. "내게 너무 오버스펙인 맥북 프로를 300 가까이 주고 구입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두뇌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생각인가" 그러던 차에 당근에 있을 수 없는 가격대의 매물을 미개봉으로 발견해 1년에 달하는 고민을 드디어 비로소 해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구입한 사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M2 Max(12-core CPU with 38-core GPU)
16inch
32G RAM
1TB SSD
생각보다 좋았던 점들
- 디스플레이와 스피커의 성능이 너무 좋습니다. 디스플레이는 너무나 밝으면서도 저반사코팅이 되어 랩탑 디스플레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만나 본 대부분의 노트북 디스플레이 모두 실내외 모두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두웠습니다. 이 노트북은 그럴 걱저이 전혀 없습니다. 스피커는 어디에서 음악을 틀어도 재밌게 들을 수 있도록 합니다.
-세대가 바뀌며 배젤이 좁아진 게 전체적인 활용성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메뉴막대에 아이콘 여러 개를 놓고 쓰다 보니 노치에 의해 가려지는 아이콘은 아예 표시조차 되지 않아 Bartender 등 별도의 앱을 구입해야 한다는 정신나간 이슈가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 견고한 빌드 퀄리티, 사실 이 정도 퀄리티가 좋은 노트북은 흔치 않습니다. 그램은 상판과 키보드가 너무 약해서 불편했지만 , 맥북은 장비의 알루미늄 하우징 자체가 단단하여 안정감을 줍니다. 이는 CNC 알루미늄 가공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감성인지라... 나중에 XPS를 한 번 경험해 봐야 제대로 비교가 되겠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
- 키보드가 살짝 바뀐 점이 조금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우선 전체적인 키감이 더욱 조금 쫀쫀해졌습니다. 느낌은 더 짜임새있는 인상을 주지만, 실용성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타이핑을 하다 보면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갑니다.
- f와 j 키의 튀어나온 부분이 기존과 대부분의 키보드와 달리 맥북 프로의 키보드에는 키의 정 중앙에 있습니다.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오히려 기존 대부분의 키보드에 어색함을 느낍니다.
- 생각 이상으로 기동성에 있어 불리합니다. 저는 m1 에어의 가벼운 점과 기동성을 큰 장점으로 꼽았는데, 맥북 프로는 이러한 영역에서의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무게도 무겁거니와, 16인치에 달하는 폼팩터는 생각 이상으로 컸습니다. m1 에어와 비교 시, 가방에서 확실히 존재감을 차지하는 게, 확실히 부담 없이 들고다닐 수 있는 물건은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배터리 타임의 경우 인상적이면서도 아쉬웠습니다. 자체 테스트 결과 배터리 성능이 86%인 m1 에어와 신품 상태의 m2 max 프로가 가진 배터리 타임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디스플레이가 miniLED로 변경되었으며, 프로세서 자체가 전력을 좀 소비해서 발생하는 불상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성능의 물건이 이 정도 배터리타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 하판이 생각보다 두꺼워 책상과 바닥의 단차가 생깁니다. 타이핑 시 손목에 무리가 갑니다. 익숙해지니 괜찮아졌습니다.
일반 용도로 필요한가?
아니요. 프로라는 네이밍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면 이 무게를 감당하면서까지 구입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여기에 꽂혀있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국 프로를 구입할 겁니다. 그러나 조금만 타협하면 에어 15가 비용적으로나 무게 측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에어와 프로의 단순 수치적인 무게 차이는 약 640g이지만, 크기에서 오는 모멘트 하중을 고려하면 그 체감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에어를 구입하시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왜 나는 에어 15로 돌이킬 수 없는가
논현 애플스토어에 들러 비교를 한 번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miniLED가 주는 맛과 16인치 디스플레이의 맛을 봐버렸고, 감가를 맞아 가면서 이걸 판매 후 다운그레이드하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어서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 에어15를 추가로 구입하고 프로 16의 활용성이 떨어질 때 쯤 처분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 될 듯 합니다.
개발자에게 필요한가?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데 원하면 구입하는 편도 괜찮습니다. 개발하는 분야가 다양하다 보니 이래저래 데스크탑과의 성능 비교를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 C++ 컴파일 혹은 React 프로젝트 빌드 정도는 라이젠 5900x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맥이 더 빠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개발을 목적으로 구입한다면 그 정도가 어찌 되었든 '생산성' 항목에 들어가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구입해도 어느정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평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너무 무겁다" 였습니다. 물론 이 무게는 멋진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AP를 모두 한 번에 들고 다니기 위해 희생해야 할 점입니다. 그래서 이 제품은 랩탑보다는 데스크탑의 성향을 조금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무게만 감당할 수 있다면, 노트북을 펼치는 모든 공간이 제 사무실이 됩니다. 이건 정말 큰 장점이죠. 에어 13의 경우 본격적인 업무는 PC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프로 16은 여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줍니다. 넉넉한 램으로 윈도우 Parallels를 돌려 기존의 한글과 오피스의 단축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윈도우든 우분투든 도커든 VM을 몇 개를 동시에 띄워도 성능상의 저하가 거의 없습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을 제공합니다. 그러니 이 제품은 딱 그냥, "묵직한 청량감"을 주는 겁니다.
Done!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물 속에 들어가서 그 시계를 찰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프리미엄을 받으며 판매되고 있습니다. 맥북도 사실 결이 비슷하다고는 느낍니다. 맥북을 구입하고서 선민의식, 우월감, 스노비즘을 논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고작 노트북을 가지고 그런 걸 느끼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맥이 '스벅 입장권'으로 통용되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맥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맥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으로 대체재를 찾아보면 마땅한 게 딱히 없습니다. 맥북만큼 멀쩡한 트랙패드와 스피커를 가진 제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맥북 프로를 구입한 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삼성 매장에 들러 갤럭시북 프로 3 16인치를 만져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 본 삼성 노트북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특히 디스플레이가 손색이 없을만큼 정말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상판 낭창거리는 것, 키보드 눌렀을 때 눌리는 현상을 고치지 못한 것을 보고 또 한 번 더 윈도우 노트북 구입을 단념하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노트북도 충분히 선택지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상품성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광고 클릭으로 고마움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개발환경(Desktop) | Ryzen 5900X, RTX 3080
개발환경(Laptop) | M2 MacBook Pro / Mac OS 13.4 Ventura
개발환경(Jetson Nano) | JetPack 4.6[L4T 32.6.1], Python 3.8.10, PyTorch 1.12.0, TensorRT 8.0.1.6, OpenCV 4.8.0
임베디드,IoT, Ai, AIoT 제품 개발 및 기타 문의 | dokixote@wklabs.io 혹은 오른쪽 아래 채팅을 통해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