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기술 블로그는 토사구팽 당하는 존재다.
제 블로그에 오랜 기간 꾸준히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IT/기술 관련해 수많은 블로그를 스쳐 지나 온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입니다. 있다면 만나뵈어 커피라도 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같은 형식의 페이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혹은 그 내용만으로 충분치 않으면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를 남겨 추가적인 도움을 구합니다. 이걸 정말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제가 블로그 방문자이자이면서 동시에 블로그 운영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저와 같은 카테고리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같은 현상을 경험할 것입니다.
방문자는 필요한 정보만 찾아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다시 찾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게 블로그의 본질이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물론 저는 일단 들러주시고 관심만 가져주셔도 감사합니다! 라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글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참고로 블로그 글을 그냥 읽고 지나가는 방문자에 대한 비난이 아닙니다. 방문자에게 더 나은 컨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원인 분석 레포트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 기술 블로그는 이렇게밖에 안될까?
길게 돌고 돌았지만 결론은 '이 블로그의 컨텐츠가 별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납득은 됩니다. 오랜 기간 포스팅을 했다 하지만 결국 그저 그런 블로그가 된 이유는 컨텐츠가 별로 와닿지 않고, 꾸준하지 않고, 대중적이지 않아서입니다.
기술 블로그가 잘 안되는 구조적인 몇 가지 원인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제 블로그에 대한 성찰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탐구 과정이기도 합니다.)
1. 대중적이지 않은 컨텐츠
제가 다뤘던 컨텐츠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만한 주제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제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이 분야의 First-Mover로서 자기매김해 독보적인 입지를 가지거나, 혹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지난 기간의 포스팅을 돌아봤을 때, First-Mover가 되었다고 할 만한 컨텐츠는 Gimbal DIY였습니다. 짐벌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을 때 쯤이었는데, 당시 저는 짐벌의 안정성에 반했지만 돈이 없어 직접 만들 생각을 한겁니다. 무언가 직접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이 그렇듯이,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할 데가 없습니다. 그때 짐벌 만든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대개 "짐벌? 그게 뭐야? 운동기구?", "(괴짜를 보는 눈빛)" 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 열정을 알리고 싶은데 그걸 알릴 유일한 채널이 블로그였고,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덕분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몇 차례 경험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경우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입니다. 흔치 않은 컨텐츠가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한 거라 생각은 합니다. 흔치 않은 컨텐츠를 하면서 인기를 얻으려면, 위처럼 First-Mover가 되려면 단순히 열정을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는 확률이 낮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제 페이지에 방문하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앨범의 타이틀곡이 좋아야 수록곡을 듣습니다.
2. 페이지 접근의 구조적 문제
A. Active Exposure VS Passive Exposure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이런 매체들은 모두 '제가 좋아할만한 컨텐츠' 를 보여줍니다. 마치 마트 시식코너같은 느낌입니다. 블로그는 직접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마치 마트에 구입할 것을 미리 적어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적어둔 걸 다 구입했다면, 깔끔하게 떠납니다. 두 가지 케이스 중 사람들이 어디에 많이 끌릴까요?
B. Limitations of language | 전 세계 70억 인구 중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1억이 넘지 않습니다. 저는 영문으로 된 페이지를 자주 들어가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굳이 한국어 페이지를 찾아 들어갈 여력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3. DIY 불모지에서의 DIY한다는 것
이 문제는 2.-B.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 페이지에 잘 안들어옵니다. 수출이 별로이면 내수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내수에서도 수요가 거의 없습니다. 유튜브에서 이걸 단적으로 느꼈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유튜브 채널은 해외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의 DIY 관련 채널 영상 댓글은 어린이 / 외국인층이 대부분입니다. 대략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지극히 주관적 의견입니다.)
A. 한국의 문화ㆍ경제ㆍ지정학적 요인 | 한국의 국가적 특징이 DIY에 관심이 없는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의 경우 이제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겠지만 전문가들이 있어도 쉽게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차 시동이 안걸릴 때 렉카나 차량 정비사를 부르는게 빠를까요? 아니면 글러브박스에 보관해둔 점화플러그를 꺼내 바로 교체하는게 빠를까요? 이런 비슷한 사례가 많다 보니 해외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업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능력도 키워야 했고, 이게 DIY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져 왔다 생각합니다.(이런 점은 주거 문화 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땅덩어리가 작은데 사람들의 교육수준은 높고, 각자 분야에서 가까운 거리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넘쳐납니다. 자기 분야 하나만 잘 갈고 닦아서 돈을 벌면, 살면서 마주하는 자기 분야 외의 문제는 다른 전문가들이 대부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 줍니다. 훌륭한 요리사가 굳이 멋진 칼을 만들겠다고 칼을 단단하게 제련하는 법, 날카롭게 만드는 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요리를 통해 번 돈으로 비싼 칼을 사면 됩니다.
B. 빠른 발전으로 인해 DIY의 필요성을 못느낌 | 높은 수준의 발전을 너무 빠른 기간에 이루다 보니, 굳이 뭔가를 수리하고, 개조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너무 빨리 일어납니다. 사용하는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수리하거나, 더 사용하기를 고민할 법 합니다. 그런데 마침 교체할 때도 되었고 신제품의 성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니 그냥 교체한다 판단합니다. 여기에는 과시욕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블로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블로그라는 매체는 현실에서 '책'과 같은 개념이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정말 가볍게 소통 매체로 쓰던 사람들은 SNS를 씁니다. 이후 지금 시점에서는 블로그는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운영하는 사람, 전문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을 담는 사람, 무분별하게 광고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요즘 20대의 일기장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짝 유행인지 중장기적 흐름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블로그를 애정으로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어떤 점이 여전히 좋은 방향이고, 어떤점을 개선해야할지 간단히 고민해봤습니다.
좋은 소식은, Gimbal DIY를 기점으로, 2년간 블로그가 방문자수, 조회수 모든 면에서 5배 가량 성장했습니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있지만 이렇게 Output이 있으면 계속 해 나갈 원동력이 생깁니다.
좋은 소식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가 여전히 사람들이 제 열정의 궤적을 봐주길 바라는 순수한 내적 동기에 기인한다는 겁니다. 저는 블로그를 애정을 담아 운영합니다. 블로그에 광고를 게시하는 것도 사실은 수익이 목적이 아닙니다. 쓰고 싶은 글은 산더미인데 내적 동기만으로는 글쓰는데 하루 종일 걸립니다. 블로그 글만 쓰는데 모든 여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달아 수익이 눈에 보이면 글을 조금이라도 기술적으로 빠르게 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광고를 달아둡니다.
좋은 소식이자 나쁜 소식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독자들과의 소통과 컨텐츠의 재미에 대해 고려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통과 컨텐츠의 재미 요소 면에서 큰 수확을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블로그가 그런 쪽으로 특화된 매체가 아닌데도 저는 그런 걸 바랬습니다. 이 모든 걸 포스팅을 다 작성한 시점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나쁜 소식은, 컨텐츠 여러 개를 벌려는 놨는데, 반응이 없다 보니 중간에 중단해버리는게 꽤 많습니다. 방문자들도 읽다가 중간에 나가버리겠지요. 방문자들이 페이지에 계속 머무르도록 하려면 어떤 연재물처럼 컨텐츠의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비약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조금씩 개선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다 적고 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일단은 이렇게 제 블로그에 대해 작은 고찰을 해 봤습니다. 사실 딱 정해진 결과나 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포스팅을 작성하며 현재 진행중인 "기술 블로그가 컨텐츠로서 재미를 느끼고, 또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의 큰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하면 이 블로그를 소홀히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하는 이야기, 그 궤적만은 이 곳에 남겨두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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