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프로에 대한 리뷰를 계속하기 전에 노이즈 캔슬링에 대해 약간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에 관해 그렇게 깊이까지 들어가진 않습니다. 다만 노이즈캔슬링 관련한 스마트폰, 이어폰과 관련된 시장 흐름 정도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어디서 시작했는가?
대부분의 기술들이 그렇듯, 노이즈 캔슬링 역시 군사용으로 먼저 개발되었습니다. 정확히는 파일럿의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개발되었죠. 그 일을 했던 회사가 보스였고, 이후 이 기술을 바탕으로 보스는 QuietComfort, 즉 QC20, QC35 등의 시리즈를 내면서 노이즈 캔슬링 시장에서 많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소니가 어느새 슬금슬금 노이즈 캔슬링 시장을 먹어오기 시작합니다. 대략 노이즈 캔슬링은 이 정도 양강구도였었는데, 얼마 전, 애플이 뜬금없이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코드리스 이어폰을 출시합니다. 아무래도 기술집약도가 높은 분야인지라 애플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기는 어렵다 판단했고, 실제 출시 직후 반응도 '얼마나 잘 되겠냐'가 대다수였지만 실제 성능은 소니를 능가하는 정도를 보여주면서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로 코드리스 이어폰 업계에서 유일한 노이즈 캔슬링을 단 WF-1000M3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노이즈 캔슬링이 시장에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기대해도 좋은 대목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을 누가, 왜 쓰는가?
일단 비행기를 타는 일이 잦은 직종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기능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비행기를 주로 여행 가는 목적으로 타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길에 소음이 잘 안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을 걷어내고 나면 기내는 굉장히 좁고, 시끄럽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내에서 수 시간 동안 비행기 엔진 소음을 듣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이들에게 노이즈 캔슬링은 기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훨씬 줄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 경우에도 집에 가려면 1시간 30분동안 배를 타야 합니다. 1시간 30분 동안 배 엔진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배 엔진 소리는 갑판에서 대화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럽습니다. 그렇기에 전 수년 전부터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 / 헤드폰 구입을 바라왔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돈이 없어서 감히 사기 어려운 물건이었죠. 그러나 최근 에어팟 프로를 통해 노이즈 캔슬링을 사용하면서 배 안에서의 삶의 질이 훨씬 올라갔습니다. 배가 출발했는지 도착했는지조차 감이 안 올 정도로 소음을 잘 줄여줍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비행기나, 배처럼 조금은 특수한 운송수단이 아닌 지하철이나 차량을 더 많이 탈 겁니다.지하철, 차량에서도 노이즈 캔슬링은 똑같이 잘 작동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심리적인 요소가 좀 들어갑니다. 지하철, 차량 소음과 같이 그래도 어느 정도 참을만하던 게 잘 안 들리는 것과 비행기, 배와 같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소음이 잘 안 들리는 것, 둘 중에서 심리적인 행복감은 후자가 더 큽니다.
가격과 기술집약도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들:
노이즈캔슬링 기술이 그렇게 많은 투자를 갈아 넣을 가치가 있는 분야인가?
저는 단언컨데 그렇다고 말할 겁니다. 기술의 발전과 실제 대중에 배포되어 쓰이는 데는 약간의 괴리가 있습니다. 또 배포만 되는 것과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데도 약간의 괴리가 있습니다. IT 시장에서 가장 익숙하고 널리 퍼진 제품을 꼽으라면 그건 스마트폰일 겁니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세대를 거듭해오면서 스마트폰의 혁신이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베젤 최소화, 카메라 성능 향상, 바->폴더블 폼팩터 변경 등 나름의 혁신을 이끌어낸다고는 하지만 더 이상 소비자가 구입할만한 Charming point가 잘 안 나오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 시점이 되면 성장세는 둔화됩니다. 시장의 성장 둔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제품에 무조건 좋은 것을 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최고의 기술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기술을 신제품에 다 때려박으면, 그건 눈 앞의 마시멜로를 먹어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스마트폰 발전의 과정을 뒤돌아봅시다.
디스플레이의 혁신 초기 큰 변화는 해상도 향상이었습니다. 단 2년 만에 해상도는 800*480(갤럭시S2)에서 1920*1080(갤럭시S4)까지 약 4배가 증가합니다. 갤럭시 시리즈의 해상도 증가는 꾸준한 성장곡선을 그리다 갤럭시S6 QHD+이후로 지금까지 큰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배터리 효율, 대응 컨텐츠 부족, 원가 상승...고해상도를 넣어도 체감이 안되는 문제도 있어 요즘은 해상도를 잘 올리지 않습니다. 해상도가 더이상 혁신이라 할만한 요소가 아니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판매를 위해 세대의 증가에 따라 무언가 변화 역시 만들어내야 합니다. 무의미한 해상도 증가 대신, 갤럭시 S7부터는 DCI-P3 광색역을 지원하고, 갤럭시 S10에서는 HDR10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요즘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펀치홀 디스플레이, 고주사율 등을 통해 디스플레이의 디자인, 혹은 사용자 경험에서 오는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발전을 봅시다. 스마트폰이 시장에 보급되면서 이 기기의 역할이 결국 어느 쪽으로 수렴할 것 같은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성능 좋은 게임되는 전화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진 잘 찍히는 전화기가 될 것인가. 시장은 사진 잘 찍히는 전화기를 좀 더 원했습니다. OIS를 추가했고 성능 좋은 이미지센서를 썼습니다. 시장이 둔화되면서 마지막으로 걸 수 있는 Charming-point가 카메라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제조사들은 자사의 스마트폰에 가변 조리개, ToF카메라 추가, 소프트웨어 처리 능력을 키우고, 잠망경 카메라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카메라를 주 혁신으로 밀고나가는 추세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이 혁신 역시 분명 한계가 존재하며,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노이즈캔슬링이 해당하는 분야, 오디오의 발전을 봅시다. 오디오의 발전은 일찍이 LG에서 쿼드 DAC, 모듈형 DAC 등을 시도했고, 블루투스 스피커 증정(베가 아임백) 등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아마 가장 성공적인 건 스테레오 스피커 장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이것 역시 방수방진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일부러 안넣었던 겁니다.) 이를 제외하면 오디오에서의 혁신은 마냥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뻔한 수순이었습니다. 모든 유저가 골든이어스 회원이 아니라는 걸 LG에서 간과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스마트폰 시장에 황금귀만을 위해 좋은 DAC를 넣는 것은 명백한 패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디오 분야에서 유의미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만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해보면 코드리스 이어폰과 노이즈 캔슬링밖에 없습니다. 그걸 아는 삼성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ANC 이어폰을 출시해 왔고, 최근에는 USB-C 타입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발매하면서 노이즈캔슬링을 시장에서 데뷔시키려고 노력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소니와 보스는 자사의 플래그십 오디오 라인에만 넣던 노이즈캔슬링을 기능 차이를 둬 가며 중급기에도 조금씩 적용하는 추세입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시장 싸움인걸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헛소리가 길어졌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노캔이 일반화 될것이고, 결국에 노캔 역시 이렇게 반짝 인기를 끌고 나면 마냥 부가가치가 큰 신기술로 다가오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점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캔슬링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노이즈캔슬링 제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상대적인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평가에는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이 어느정도 들어간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용산역에서 집가는 길의 여정:
용산역 가는 길 : 지하철 내에서는 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역 안내하는 목소리는 고음이다보니 잘 걸러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노이즈캔슬링 특성상 고음보다 저음을 더 잘 걸러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 왜 이 소리가 들리지? 거슬리네?' 라는 생각을 안합니다. 노캔은 만능에 가깝지만 만능이 아닙니다.
용산역 역사 내 : 개찰구 -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개찰구의 삐 삐 하는 고음이 들렸습니다. 100% 막아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이즈캔슬링 된게 맞나? 하고 껐다가 엄청난 소음에 재빨리 다시 껐습니다.
KTX 내부 : 입석으로 열차를 타게 되어 열차 칸 사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쪽은 고음이 많이 들려서 마찬가지로 100% 막아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차 객실 안에 들어가니 이어폰이 감당할만큼 소음이 많이 내려갔나 봅니다. 잘 막아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택시 안 : 잘 작동합니다.
배 안 : 이게 좀 재밌는 부분인데, 많은 부분의 소음이 제거되어 이제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음이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배 바닥을 매질로 해서 뼈를 울려오는 소리는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이 상황에서 노이즈캔슬링을 켜면 소리를 동반한 진동에서 소리가 사라집니다. 비유하자면 노래가 나오는 큰 스피커 앞에 있을 때 몸이 울립니다. 여기서 몸이 울리는건 계속 되는데 귀에 소리는 전혀 안들리는 상황인겁니다.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 : 예전같았으면 블루투스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놓고 청소기를 돌렸을겁니다. 둘 중에 누가 더 잘 들리나 싸움을 붙여 놓으면 청소기와 스피커 그 사이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건 제 귀였습니다. 이젠 귀에 에어팟 프로꽂고 청소기 돌립니다. 훨씬 조용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로그 포스팅할 때 키보드소리도 상당부분 저감되며, 세탁기 소리도 잘 안들립니다. 훨씬 낫습니다. 이런 보청기라면 전 끼고 다닐겁니다.
총평
노이즈캔슬링에 대한 설명만 하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버렸는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살 만 하다! 라는 겁니다. 일단 소음을 줄여줘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피로도를 많이 줄여줍니다. 피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박카스를 사 먹는 것보다 에어팟 프로를 써서 애초에 피로하지 않게 하는 게 효과가 더 큽니다.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귀 건강을 생각해보시면 노이즈캔슬링 하나 들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정말 귀 건강을 생각한다면 음악을 듣지 않는 게 맞겠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음악은 듣고 싶고 귀 건강은 지키고 싶고, 이중적인 게 사람 심리 아니겠습니까? 이어폰의 볼륨을 낮춰서 들으려니 주변이 너무 시끄럽다면, 볼륨을 낮춰 들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에어팟 프로가 제공해줍니다.(노이즈캔슬링이 청력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
난청은 돌이키기 어려운 병입니다. 시각이 한 번 손상되면 돌아오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기에 선글라스를 낍니다. 청각 역시 마찬가집니다. 한 번 손상되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귀에 선글라스를 착용한다는 마음으로 구입하면 큰 부담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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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